일요일. 윤달의 마지막 날이라 묘를 다듬고 주변을 정리하기에 적절한 날이라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어머니는 즉시 일어날것을 명했고, 즉시 떠날 준비를 하라 하셨다.
대충 이빨과 얼굴만 닦고 어머니께서 이르신 준비물을 하나씩 챙겼다.
어머니 욕심에는 아버지도 이길에 동행하길 바라셨으나 애석하게도 아버지 께서는 외부의 업무로 인해
함께 하시지 못하고 어머니와 단 둘이 길을 떠나게되었다.
중간에 나의 사촌(숙부의 아들)인 형원이의 면회를 했다. 현재 성남 국군 수도 병원에서 근무중이여서
그곳을 들린 것이다. 숙모를 닮은 모습이기에 사회에서 한 인물하게 생긴 멋진 모습이였다.
하지만 나에겐 12년 만에 만난 그였기에 다소 어색했다. 게다가 나 자신도 그렇게 떳떳한 모습이 아니였기에
쉬이 터놓기 이야기하기도 어려웠다. 게다가 이번에 할머니 산소에 방문하기 위해 데려가려 했지만
애석하게도 외출이 불가했고, 단지 그곳에서 산 피자와 딸기와 초코렛만 건네 주었다.
막상 이렇게 만나니 왠지 섭섭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형원이와 헤어지고 즉시 광주에서 여주로 향했다. 애석하게도 길이 헷갈려 중간에 정호에게
전화를 걸어 길을 물었다. 다행히 어머니도 이전에 숙모에게서 길을 들은 기억이 있어 내가 정호에게서
받은 내용을 종합하여 얼추 얼추 여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주의 길에서 할머니 묘소 근처까지 자란 소나무를 죽이기 위해 농약 2통과 간단히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막걸리와 포 그리고 과일 몇가지를 구입했다.
간만에 도착한 곳에서는 낙엽이 가득해 다소 어지러워 보였지만 어머니와 함께 치우고 나니 나름대로
괜찮은 모습이 되었다. 그 때 어머니께서 증조할머님의 묘소에 깊게 박힌 뿌리를 보시고 깜짝 놀라셨다.
읍내에서 구입하신 호미로 그 뿌리를 파려 했지만 어찌나 깊이 박혔는지 쉬이 뽑히지 않는 것이였다.
이렇게 깊이 깊이 박힌 이 뿌리는 열추 파냈지만 역시 둘이서는 역부족이였다.
누구보다 조상에대해서는 절대적이신 어머니께서는 이런 점이 우리 집안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 하셨다.
묘가 없으면 모르겠지만 묘가 있으면 이런것 때문에 더욱 더 잘 살펴야 한다 하셨다.
더욱이 당신께서는 묘 없애고 화장하시라 하셨다. 이런 고생을 나에게 안겨 주시기 싫어하심을
보여 주셨다. 난 농반진담반 해서 묘지기 까지 사서 꼭 묘에 안치 시켜 드리겠다 했지만...
어떻게 될지는 나도 모르겠다. 돈이 나 그렇게 있을까나 ... 훗.

하여간 결국 캐내지 못한 뿌리에 아쉬움을 뒤로 한채 돌아왔다.
아마도 지금 너무도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집안과 나의 원인은 그 뿌리인듯 싶다.
그렇게 생각된다. 나에게 몇푼의 돈이 있다면... 물론 몇푼의 돈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지만,
증조 할머니와 할머니의 묘소를 이장시켜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돈...만 있다면 말이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