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나를 따라다니는 명제다.
사실 우리집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는 늘 나에게 평범하게 살라 하신다.
남들과 똑같이 돈에 욕심을 부리며, 집도 사고 차도 사고,
결혼해서 애도 낳고 평범한 직장을 다니면서 제시간에 출근하고 제시간에 퇴근한다.
이름 따윈 멀리 알릴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들 처럼 말이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시길 바란다. 그것이 그 분들의 명제다.
나도 한명의 도시인으로 한명의 인간으로써 그러한 안정을 바란다.

그리고 또하나의 나.
늘 새롭고 재미난 일을 찾아 다니며,
아무것도 신경안쓰며 유유자적하게 살며, 많은 것을 고민하고,
필요 하든 필요 없든 깊이 생각하며, 공상, 망상 가릴 것 없이 머리 속을 가득채우면서
동시에 남들과 계속 어울리며, 사람들에게 내 이름을 알리고,
나의 기발한 생각을 공유하고,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살고 싶다.
이것은 나의 명제며, 불안정한 생활을 의미한다.
이것은 나의 꿈이며 내가 바라는 것이다.

이 속에서 이리 조금, 저리 조금 왔다갔다 하며,
스스로의 인생을 가지고 이런 저런 테스트를 한다.
그리고 그 괴리감 속에 수많은 의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구한다.
이제는 남에게 묻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나만의 프라이버시가 되고,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 같이 깊게 공유하며 고민해줄 사람 따윈 없다.
설사 있을지 모르겠지만, 밝히고 싶지 않은 고민이기에 피한다.

부모에게 나의 꿈을 이야기해 봐야 십중팔구 미친 짓이며, 무의미 한 짓이며,
잘못된 삶이라 한탄하며, 나에게 끊임없이 뭐라 하실 것이다.
점점 대화가 없어지는 중요한 원인이라 생각된다.

불안정한 삶은 그냥 꿈만으로 생각하고 안정된 생활을 현재로 만드는 것이
잠깐 동안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아주 잠깐.
그러나 결국 나에게 스스로 하는 암시이자 속임수에 불과함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늘 변한다. 그렇게 알고 있고, 그렇게 믿고 있으며, 내가 그러하다.
지금의 내가 옳바른지 그른지 따위는 2차 문제다.
만족하고 있는가?

아직은 답을 제시하고 싶지 않다. 더 많은 내 삶을 두고 실험을 해봐야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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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즈막히 일을 마치고 집에와서 세수를 했다.
세수를 하면서 "나에게도 고단한 일상이...." 라는 서두를 시작으로 혼잣말을
하던 중, 갑자기 "고단한 일상" 이라는 단어가 어딘가 모르게 나와 매칭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언제나 마이너 같은 다른 생각과 행동을 내 스스로의 자랑으로 삼으며,
보통 사람들 처럼 사는 것은 무척 힘들다는 생각을 굳히며,
매일 마주치는 보통 사람으로써 갖추어야 되는 기본적인 사항들을
피하고 다니는.....
어찌보면, 난 나스스로 "일탈"을 꿈꾸며 "일탈"을 늘 시도하고 저지른다.

하지만 가만히 돌이켜 보면, 난 분명 이 일탈을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타협하며 산다. 톨스토이의 "부활"이라는 책에서 나오는 귀족 청년 처럼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나름대로 타협하여 "일탈"다운 "일탈"은 접어둔체
"일탈" 처럼 생활한다. 결국 정리하자면 "소심한 일탈"을 늘 자행한 것은 아닌가?

분명, 보통 사람들이 갖는 길 속에서는 다양한 "행복"과 다양한 "불행",
다양한 "즐거움"과 다양한 "괴로움" 모든 것이 얽혀 삶이라는 밥에 다양한
소스를 어우리며 살겠지만, 늘 "소심한 일탈"을 하는 나에게는 다분 그런 소스는
접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씩은 보통 사람들 처럼 사는 것이 무척이나
부러우면서도 이 "소심한 일탈" 속에서 얻는 자유의 맛은 마약과 같아 쉬이
헤어나오긴 힘들다. 아마도 그렇기 때문에 계속 "소심한 일탈"은 계속 될 것 같다.
그 끝은 나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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