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아니 30대 중반까지 나에게 기준이라는 항목은 매우 귀찮은 존재였다.

내가 가진 생각이나 활동을 할 때 규제하는 대상이였고, 새롭게 바라보기 위한 View의 차단막이였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하는데 있어 이 기준이라는 것은 매우 나를 힘들게 한적이 많아,
항상 거부하고 불만을 품었다. 

그러다, 40대 중반을 넘고, 과중한 프로젝트하나 한 뒤, 건강이고 멘탈이고 뭐고 다 나가자,
모든 업무가 힘겹고 버겁고, 만사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보면 번아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 2년동안 매우 수동적인 움직임을 보냈고, 아무일도 안한듯.
그러다가 망가진 몸이 더 망가지면서 이제는 활동적 제약까지 발생하니 
그간 내가 보여주었던 다양한 호기심과 역동성은 급감했고, 무리 하는 것 자체가 몸으로 거부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게되었다.

그러다가 작은 일이라도 해야 되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손대기 시작했고,
지금은 어느 정도의 업무는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전처럼 임기응변으로 업무 처리하기에는 머리도 엉망진창, 체력도 엉망진창이 되니 과거의 방법대로 업무가 처리가 안되었다. 이젠 진짜 업무에 대한 모든 위임이 필요한 시기가 와버렸다. 내가 직접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니, 그 업무 하나 하나에 대해서 나누어 넘겨주는것 외에는 방법이 없게되었다.
넘기는 것까진 좋은데 과거에는 안되면 내가 하지 뭐 라는 생각에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바로 "기준"이 필요해졌다.

이 기준이라는게 필요해진 이유는 바로 누군가 일을하고, 누군가 책임을 지며, 누군가 결과를 확인해야 하는 "누군가"를 결정하고 무엇을 해야할지를 결정애야 하는데, 문제는 이 결정에 분쟁이 따른다는 것이다. 왜냐면 나와는 다르게 업무가 늘어나는게 싫고, 책임 지는게 싫으며, 그 결정을 한 뒤 비난 받기 싫다보니 결국 "기준"에 따라 누군가는 결정되고, 어떤 일을 하면 그래도 납득하고 넘어간다는 거다.

내가 에너지가 넘칠때, 나의 경우 궁금했다. 과연 그 일은 무엇이고, 왜 해야 하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지 그 자체가 너무도 궁금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일을 해봐야 되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적극적으로 그 일에 뛰어든다. 
오히려 이런 기회를 놓치는 것을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그게 뒤집어진 것이고, 그 바보 같은 일을 이제 내가 해야 되며, 결정을 해줘야 되는데... 납득이 되게 해야 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 "마움에 안들면 그냥 내가 할께!" 라는 선언이 이제는 너무도 어려운 것이다. 

차츰 업무에 대해서 "기준"에 대해서 논의하고 "기준"을 결정하고,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업무 메뉴얼이라고 하는데, 매번 문서화한 메뉴얼을 들고 다니는 일은 안되니, 
난 그냥 업무"상식" 이라고 돌려서 표현한다.

일하기 싫거나 힘들면.... 필요해지는 그 무언가다.

좀 더 에너지를 아낄 걸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렇게 나이 먹고 일하는게 쉽지 않구나 싶기도 하고,
어려우니 좀 더 쉽게 풀고 덜 일하기 위한 방편이며,
그래서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도 싫어했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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